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더글러스 맥아더 (문단 편집) == 후손 == 명성과 경력을 비롯한 스케일에 비해 의외로 자녀 수는 매우 적었는데 아들인 아서 더글러스 맥아더 4세 한 사람 외에는 자녀가 없었다. 맥아더의 외아들인 아서는 아버지의 소망과 달리 군인이 되지 않았고 맥아더라는 성마저 버렸다. 맥아더가 지은 시인 "[[http://woorok.tistory.com/2966|아들을 위한 기도]]"는 한국에서 꽤 유명한데, 이 시의 주인공인 그의 외아들 아서 맥아더 4세는 아버지의 장례식 이후 아예 자신의 성을 바꾸며 집안과 끊다시피 하고 잠적했으며, 친한 친척들하고만 연락이 되고 있고 다른 행방은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 그들에 의해 [[뉴욕시]]에 거주한다는 것 정도만 알려진 상태다. 2000년에 어머니인 진이 사망했을 때도 언론에는 한 번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아들이 햄버거 가게의 주인이 되었다는 소문도 있지만 완전 허구다. 오죽했으면 2000년대 중반쯤에 죽었다는 소문이 돌았으나, 그와 연락이 되는 친척들에 의해 부정되었다. 그는 어릴 때부터 너무나 유명한 아버지로 인해 세간의 관심을 지나치게 받았다. 아버지가 원수 계급장을 달 정도가 되면 대개의 경우 그 아들은 이미 장성해서 사회의 중견이 되어 있지만[* [[체스터 니미츠]] 원수의 아들인 체스터 니미츠 주니어는 일찍이 [[태평양 전쟁|아버지와 같은 전장]]에서 [[잠수함]] 함장으로 활약했으며, 1957년에 해군 [[소장(계급)|소장]]으로 예편한 뒤 [[Texas Instruments]]에 입사하였다. [[미국해군사관학교|미 해군사관학교]] 엘머 B. 포터 교수의 저술로 1977년에 나온 니미츠 전기에 의하면, 니미츠 주니어는 부친의 후광과 그 자신이 전쟁에서 세운 공적으로써 충분히 [[대장(계급)|4성 제독]]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시대가 지나면서 변질된(?) 해군 장교에 대한 가치관의 혼란이 생겨 결국 전역을 결심하게 되었다고 한다. 물론 니미츠 원수는 아들이 해군을 떠나는 것을 달가워하지는 않았으나, 따뜻한 지지를 보냈다고 한다.], 아서 맥아더 4세의 경우 맥아더가 58세가 되어서야 본 늦둥이라 그가 태어났을 때 이미 맥아더는 미군 최고위 장성이었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맥아더의 명성이 하늘을 찌르자 늦둥이 아들이자 유일한 자녀인 그에 대한 세간의 관심도 비상해져서 어렸을 때 이미 라이프 지의 표지 모델이 될 정도였다. 또 맥아더가 일본의 실질적인 통치자가 되었을 때도 그는 고작 7살의 꼬마 소년에 불과했다. 이 정도면 한 나라의 왕자나 다름 없는 위치였고 지금으로 따지면 셀럽과 같은 상황이었으며 세간의 관심 또한 평범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어렸을 때는 몰라도 장성하면서 그는 이런 세간의 관심을 점점 견디지 못했고 결국 아버지가 죽자 성을 바꾸고 은거하게 된다. 그의 친척들도 이런 그의 심정을 잘 알기 때문에 절대 그에 대해서 노출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어린 아이를 지나치게 스타로 만들면 안 된다는 대표적인 예시 중 하나. 더글러스 맥아더는 형인 아서 맥아더 3세와 매우 사이가 좋았는지, 서로 자신의 아들에게 자신의 형제 이름을 붙여줬다. 그래서 미국의 외교관으로 주일 미국대사를 지낸 더글러스 맥아더 2세(1909~1997)는 실제로 더글러스 맥아더의 조카이고 더글러스 맥아더의 아들 이름은 개명 전까지 아서 맥아더 4세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